연재(Series)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제33화(마지막회)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제33화 – 쿠바오를 급히 가는 시간 (마지막회) 2025년 8월 11일, 베일러를 떠나는 아침. 햇살은 여전히 부드럽고, 파도는 여전히 잔잔했지만 마음엔 이미 구름이 깔렸다. 지쳤다. 몸도 지쳤고, 통장도 지쳤고, 감정도 꽤 많이 닳아 있었다. 지난 며칠간은 내 삶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현실’ 같았다. 고요함도 있었고, 우연한 친절도 있었고, 무뚝뚝하지만 따뜻한 술집 아주머니의 미소도 있었고…

필리핀《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31화/32화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제31화 – 산티아고 아쉬움을 뒤로하고 바다가 부르는 베일러(Baler)로 2025년 8월 4일, 저녁 – 산티아고 작별 부랴부랴 짐을 싸고 몬테산티아고(산티아고 시티)를 떠나려 했다. 숙소 주인과의 작별은 번개처럼 짧았다. 달려간 터미널은 ‘산티아고 중앙버스터미널’이었지만, 밤과는 인연이 없었다. “더는 출발 좌석이 없어요.” 정보를 잘못 알고 무작정 나온 게 화근이었다.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서 …

필리핀《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29화/30화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제29화 - 투게가라오(Tuguegarao)를 떠나 산티아고(Santiago)로 가는 긴 여정길 2024년 7월 29일, 아침 눈을 떴을 때, 시계는 이미 아침 8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앗, 망했다.’ 내가 평소보다 늦게 일어난 건, 투게가라오라는 도시가 주는 묘한 평온 때문이었을까. 햇살은 이미 창문을 넘고 있었고, 머물던 숙소 주인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멀어지고 있었다. 서둘러 배낭을 메고 문…

필리핀《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27화/28화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제27화 – 발레스테로스를 떠나, 투게가라오(Tuguegarao)로 가는 긴 여정길 2025년 7월 21일 필리핀 북부의 조용한 마을, 발레스테로스(Valleysteros) . 이른 아침, 창밖으로 새들의 짧은 울음소리가 들리며 내가 머물던 작은 숙소 Balai Carmela Homestay 의 창문이 붉게 물들었다. 평소보다 늦게 눈을 떴고, 곧장 떠나야 할 시간임을 직감했다. 아침 인사도 변변히 나누지…

필리핀《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25화/26화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제25화 - 클라베리아에서 발레스테로스로 가는 길 2025년 7월 16일, 오후. 작별의 바람과 버스 창밖 풍경 점심은 클라베리아의 Guzmana Avenue 끝자락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먹었다. ‘Rosita’s Eatery’. 메뉴는 단순했다. 판싯 칸톤 하나, 그리고 망고 쉐이크. 누구나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그런 조합이었지만, 오늘은 왠지 특별하게 느껴졌다. 이 여행의 마지막 ‘클라베리아의…

필리핀《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23화/24화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23화 - 라오그(Laoag)에서 클라베리아(Claveria, Cagayan) 가는 길 7월 9일 아침. 라오그에서의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며칠 동안 머물렀던 Partas Bus Terminal 근처의 작은 게스트하우스를 나서며, 이 도시에서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숙소 주인이 건네준 따뜻한 판 데 살(Pan de Sal) 한 조각과 진한 바랑가이 커피 한 잔으로 간단한 아침을 마치고, 가벼…

필리핀《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21화/22화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21화 - 비간에서 라오그(Laoag) 가는 길 📆 7월 2일 비간을 떠나는 아침, 여전히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 대충 배낭을 메고 거리로 나섰고, 푹푹 찌는 아침 공기를 지나 터미널로 향했다. 줄을 잘못 섰던 탓일까? 그녀와 마주쳤고, 우리는 우연히 같은 버스를 탔다. 버스비를 내주며 그녀는 웃었다. "오늘은 내가 쏠게요. 대신 저녁밥은 당신 차례." 길고 낡은 버스는 덜컹이며 북쪽으로 달…

필리핀《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19화/20화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19화: "6월 25일, 산타 마리아에서 비간으로 가는 길" 6월 25일, 산타 마리아 를 떠났다. 아침의 상쾌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차가운 아침 공기 보다는 뜨거운 햇살 을 더 기대한 내가 너무 한심해졌다. 태양은 이미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보니, "오늘은 적어도 7시간을 걷겠구나..." 라는 깨달음이 스쳤다. **"비간, 이리…

필리핀《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17화/18화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제17화 6월 20일, 뱅드에서 산타 마리아로 아침, 뱅드. 한껏 눅진한 이른 햇살이 산등성이를 감쌌다. 나는 배낭을 메고 숙소 주인 아주머니께 깊게 허리를 숙였다. "살아있으면 또 오겠습니다!" 아주머니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나는 뒤돌아 터미널로 향했다. 길가에 늘어선 나무들, 은은한 국수 냄새가 풍기던 작은 포장마차, 그리고 이상하게 정든 골목들. 내 발걸음은 터미널로 가는…

필리핀《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15화/16화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제15화: 본톡 지나 험난한 뱅드(Bangued)로 가는 마지막 이야기 그리고 도착하는 풍경 마음...... 뱅드로 향하는 길은 마치 시간이 꺾여 내려가는 골짜기 같았다. 본톡의 마지막 이슬을 털어내며 버스를 탔을 때, 나는 그곳을 다시 올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질문을 가슴속에 넣고 있었다. 도로는 험했고, 산의 그림자는 점점 낮게 깔렸다. 시간이 아닌 거리의 피로가 쌓일수록 마음은 점점 더 가벼워졌고, 모…

필리핀《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13화/14화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제13화: 바타드로 가는 길 — 피터는 왜 자꾸 돌아보는가 바나웨의 아침은 유난히 조용했다. 닭이 우는 소리, 멀리서 물 긷는 소리, 그리고… “형, 나 허벅지 안 움직여져.” 피터의 목소리. 전날 계단논을 오르내린 피터의 다리는 이미 배신을 시작한 듯했다. “너무 예뻐서 내려갔는데, 너무 예뻐서 못 올라오겠더라구요.” “근육통이 감동을 이기지 못한 거지.” 우린 서로를 놀리면서도, 다음 마을 바타…

필리핀《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11화/12화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제11화: 사가다의 골목에서, 피터와 내 여행은 시작되었다 6월 4일 — 동굴, 박쥐, 그리고 말 많은 독일인 오늘의 첫 일정은 사가다의 명물 서머쏘그 동굴(Sumaguing Cave) . 가이드와 함께 내려가는데,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Excuse me! You guys also going down? This is my fourth time! I’m kind of a cave expert.” — …

필리핀《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9화/10화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제9화: 바기오, 안개 속의 도시에서 나를 걷다 5월 27일 — 바기오의 첫 아침 창밖은 안개가 내려앉은 듯 뿌옇고, 지프니 소리는 아직 들리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옷을 입고, 신발 끈을 조였다. 오늘은 도시를 걷는 날. 아니, 도시가 나를 걷게 할 날이다. 호텔을 나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번햄 파크(Burnham Park). 이른 아침의 공원은 조용했고, 호수 위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노란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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