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제31화 – 산티아고 아쉬움을 뒤로하고 바다가 부르는 베일러(Baler)로
2025년 8월 4일, 저녁 – 산티아고 작별
부랴부랴 짐을 싸고 몬테산티아고(산티아고 시티)를 떠나려 했다.
숙소 주인과의 작별은 번개처럼 짧았다.
달려간 터미널은 ‘산티아고 중앙버스터미널’이었지만,
밤과는 인연이 없었다.
“더는 출발 좌석이 없어요.”
정보를 잘못 알고 무작정 나온 게 화근이었다.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서 묵는다.
근처 Costa Pacifica 호텔 대신 조금 비싼 Hotel Rupert A Baler를 잡았다 .
스스로에게 위안을 주고픈 마음이었다.
근처 식당 Kusina Luntian에 들어갔다.
필리핀의 전통 ‘파코 샐러드(Pako salad)’와 구운 삼겹살(liempo)을 주문했다 .
맥주로는 현지 인기 맥주 Red Horse 두 병.
기분이 조금 나아진다 .
호텔로 돌아오며 내일 마주할 바다를 생각하니 가슴이 설렜다.
잠은 쉽게 오지 않았지만, 마음은 편안했다.
2025년 8월 5일, 아침 – 출발
호텔에서 주는 조식도 못먹고 간단히 챙기고 부랴부랴 터미널로 향했다.
‘Baler Central Terminal’에 도착하니 다행히 Joy Bus (Genesis Transport) 좌석이 있다 .
첫 차는 밤 11시, 막차는 새벽 5시 30분까지 운행된다고 한다 .
음료수 하나와 빵 두개을 사들고, 드디어 베일러행 버스에 오른다.
산과 강이 끝없이 펼쳐진다.
묘한 분위기 바람과 창밖 풍경이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이른 아침 산티아고는
정말 아름답고 조용했다.
버스 안에서 만난 외국인 여행자와
여행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중간에 휴게서 2번 들러 간식 해결
창밖 풍경이 조금씩 바뀐다.
그리고… 멀리서 바다 내음이 다가온다.
하지만 발까지 닿은 것은 아니었다.
해안을 끼고 한참을 더 내려가야 했다.
그리고 드디어, 베일러 도착.
2025년 8월 5일, 오후 – 바다의 도시, 베일러
베일러는 ‘필리핀 서핑의 발상지’라 불리는
이례적인 바닷가 도시 .
짭짤한 바다 내음과 신비로운 기운이 가득하다.
바닷가 근처 ‘Sabang Beach’ 인근에 있는 Bay’s Inn에 체크인 .
이대로 기절하듯 쉬고 싶었다.
잠시 주변을 거닐다가,
저녁은 다시 Yellow Fin Bar and Grill에서 .
숯불에 구운 bangkulis(황새치), 오징어와 함께
Red Horse 세 병을 곁들였다.
길고 강행군이었지만,
맥주 한 모금, 해변의 바람 한 줌이면
피로는 눈 녹듯 사라졌다.
몸과 마음이 서서히 풀려간다.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북부 루손주 걷는 시간》
제32화 – “베일러, 야 바다여…”
🗓️ 2025년 8월 6일(목) 오전 ~ 8월 10일(월) 저녁나와 동행하는 바다에서의 5일
2025년 8월 6일 (목) – 첫 만남의 아침
이른 새벽, 바닷가의 습기 서린 공기가 창문 사이로 스며들었다.
살포시 눈을 떠보면, 어젯밤 치렁치렁 달아놓은 커튼 틈 사이로
은은한 노을빛이 바다 위로 밑그림을 그린다.
“야, 바다야…”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대야처럼 부풀은 파도 위로
첫 번째 발자국을 남긴다.
모래에 손가락으로 꾹 찍은 심볼 하나.
아침을 주는 Bay’s Inn의 작은 라운지에서 계란 프라이, 포츄토, 바나나 팬케이크, 그리고 과일플래터.
아로마 가득한 커피 한 모금.
이제야 비로소 이곳과 내 시간이 동기화되는 기분이다.
2025년 8월 6일 (목) – 오후 모험: 해안 절벽 & 동굴 탐험
Sabang Beach를 따라 차로 달리다 보면
창밖 우거진 숲 사이로 절벽이 모습을 드러낸다.
“Diguisit Cliffs”라 불리는 이 외곽 절벽.
약간의 긴장감을 안고 접근하자,
기괴하게 생긴 굴곡진 바위면과
파도 충돌 소리가 자연이 생명있게 숨 쉬는 소리 같았다.
절벽 아래로 내려가니 emerald cave 같은 작은 동굴 입구가 보였다.
손전등 하나 챙겨 조심스레 걸어들어가니
안쪽은 바위틈 사이로 햇살이 부서지며
작고 투명한 연두색 석회수풀이 꿈틀뛰듯 바닥에 고여 있다.
신비로운 빛.
“와… 이게 진짜 자연이구나.”
혼잣말이 파도에 묻혀 사라졌다.
2025년 8월 7일 (금) – 서핑 데이, 바람과 파도를 타다
“서핑은 초행이야?”
현지 코치가 반농담 반진심으로 물었다.
노력해 예쁘게 말하면… 반은 진심 되겠지.
노란 서프보드 하나 들고,
첫 시도는 무릎만 대도 파도에 밀려 휩쓸렸다.
하지만 몇 번 더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
“타! 타!”
코치의 외침과 함께,
파도 위에 몸을 싣는 그 순간…
잔잔히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몸의 무게중심이
마치 내 인생의 균형을 찾는 것 같았다.
몇 시간, 파도와 장난치다
다리에 알이 배기도록 하루를 보내고,
저녁엔 Beachfront 카페 Barok’s에서
싱싱한 grilled tuna steak과 맥주 세 잔.
바람 소리와 파도 리듬이
밤하늘에 리믹스처럼 울려 퍼진다.
2025년 8월 8일 (토) – 일출 요가 & 조용한 묵상
새벽 4시 30분, Playa Azul 부두에 도착했다.
붉은 빛 띤 해는 수평선 위로 찬찬히 솟아오르고,
요가 매트 위 내가 흐릿한 실루엣이 되었다.
바다와 맞닿은 숨.
“움” 소리 하나로 시작된 동작이
너울너울 부드러운 파도의 호흡과 닮았다.
수업 후, 부두 난간에 앉아
물결 위 이슬 맺힌 조개껍데기를 줍는다.
바닥에 놓고 미래의 나에게
“넌 여기서 이끄는 대로 따라왔다”라고,
은근한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2025년 8월 8일 (토) – 오후 – 해변에서의 서서한 시간
Sabang Beach 잔잔한 해변에
단출하게 돗자리 하나 펴고 누웠다.
책은 챙겼지만,
마음은 흐르는 구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물 속에선 문득
“내가 언젠 적 나, 여기서 이렇게 쉬고 있겠지”
생각이 피어난다.
조용한 파도, 붉게 물든 가두리라떼 한 잔.
그냥 낮잠이다, 굴음.
2025년 8월 9일 (일) – 석양의 절정 & 캠프파이어
Vincent Bar 주변 언덕으로 미니 하이킹.
절벽 위에서 내려다보는 Sabang Bay.
해가 뉘엿뉘엿 지자
하늘에는 핑크와 오렌지, 퍼플이 층층이 쌓인다.
모래사장에서 또 하나의 식탁:
해산물 숯불구이 + 얼음 맥주 세 병 =
이 순간을 위한 조합.
어디선가 가져온 작은 스피커에서 로컬 밴드
"Sea Souls"의 어쿠스틱 리듬이 부드럽게 흘러나온다.
소리 없는 파도 리듬에 맞춰
내 손이 작게 흔들렸다.
2025년 8월 10일 (월) – 작별을 미루는 하루의 끝
마지막 아침.
익숙해진 Bay’s Inn 라운지.
여느 날처럼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창밖으로 흘러가는 구름을 따라 시선을 둔다.
메모장 한 귀퉁이에
“이 바다, 나를 다독였다”
짧은 문장을 써넣고는
가만히 입꼬리를 올려본다.
Diguisit Cliffs의 바람도,
Sabang Beach의 자갈 소리도
이제는 내 안에서 익은 리듬이 되어 흘러간다.
아직 떠나지 않았다.
떠날 준비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은 이미 "안녕"이라는 말을 여러 번 삼킨다.
점심 무렵,
서핑하던 젊은 친구들과 마지막으로 웃으며 사진 한 장.
Barok’s Surf Shack에서
구운 오징어 한 접시에 맥주를 곁들여 늦은 점심을 먹는다.
입안에서 바삭하게 부서지는 짠맛,
그리고 이 도시의 태양이 내 어깨 위에서 살짝 눈을 감는다.
오후엔 Sabang Beach 모래 위에 앉아
시간이 흐르는 소리를 들었다.
발끝으로 들어오는 파도의 촉감은
"떠나지 않아도 돼"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시간은 느릿하게 저녁으로 기울었고
나는 아직 Baler Central Terminal로 가지 않았다.
그저 모래 위에 누워,
슬리퍼 옆에 놓인 가방을 바라보다 잠이 들었다.
어디로 갈까.
모르겠다.
내일 아침에 정해도 늦지 않겠지.
오늘은 그저 이 바다와 하루를 더 나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