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몰(Mall)은 우기때 집이다...

필리핀 몰(Mall)은 우기때 집이다...
필리핀 몰(Mall)은 우기때 집이다...

《비가 오면 나는 몰로 간다 – 필리핀 몰은 우기의 집이다》

필리핀은 두 계절밖에 없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하나는 더운 계절, 다른 하나는 아주 더운 계절.
하지만 그 둘 사이에 숨은 진짜 계절이 있다. 바로, “몰의 계절”,
공식 명칭으론 “우기(Wet Season)”라 불리는 그것이다.


비가 오는 날, 필리핀 사람들은 집으로 간다 – 그런데 그 집이 '몰'이다.

우기철의 하늘은 약속 없이 화난다.
해가 뜨겁게 내려쬐다가도 어느 순간 구름들이 모여들고,
그들끼리 눈빛 교환 한 번이면 순식간에 하늘이 폭포수로 변한다.
비는 사정이 없다. 길도, 골목도, 사람도 전부 적신다.

그리고 그 순간, 필리핀 사람들은 어디론가 빠르게, 그리고 익숙하게 향한다.
우산도 없이, 뛰지도 않는다.
그냥 묵묵히, 젖은 슬리퍼를 질질 끌며,
그들의 **제2의 집, 몰(Mall)**로 걸어간다.


몰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몰은 대피소이자 쉼터, 냉방 천국, 때로는 신전.


📍 마닐라의 심장, SM 메가몰

도시의 중심에서 언제나 우뚝한 이 몰은
우기철엔 마치 수천 명을 품는 실내 캠프장 같다.
출입문을 통과하면,
“웰컴 투 냉장고”라고 말하는 듯한 시원한 바람이
땀과 비에 젖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감싼다.

몰 안엔 이미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있다.

  • 가족 단위로 쇼파 점령한 사람들

  • 충전 포트 근처에서 노트북 켜놓고 일하는 프리랜서

  • 그냥 앉아 하염없이 바깥 비를 바라보는 할머니

누군가는 햄버거 먹으며 전기 충전하고,
누군가는 쇼핑백을 베개 삼아 잠시 눈을 붙인다.
이곳은 쇼핑몰이 아닌, 도심 속 피난처다.

에피소드:
한 번은 내가 몰 바깥에서 우산 없이 비를 맞고 허겁지겁 들어왔는데,
안에서 비에 흠뻑 젖은 개 한 마리가 주인과 함께 앉아 있더라.
몰 경비는 아무 말 없이 물걸레를 가져와 조용히 바닥을 닦았다.
이곳은 모두가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니까.


📍 세부의 아얄라 센터반야외 몰의 반전 매력

세부의 아얄라 센터는 구조적으로 반쯤은 야외다.
즉, 비가 오면 몰 내부에 비바람이 살짝 들어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몰을 더 사랑한다.

왜냐고?
"젖지 않는 경로", 이른바 No Wet Path가 있기 때문이다.
현지인들은 다 안다.

  • 어디로 들어가야 비 한 방울 안 맞는지

  • 어느 지붕 아래로 돌면 끝까지 마른 발로 푸드코트까지 갈 수 있는지

에피소드:
비에 쫄딱 젖은 여행자 하나가 몰에 들어와 어리둥절해 있을 때,
경비원 아저씨가 다가와 말했다.
"Sir, follow me. I will bring you to the dry way."
그리고는 진짜 자신만 아는 루트로 데려다줬다.
길 끝에는 조용한 서점이 있었고,
그 안엔 고요히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었다.
몰 속에 숨겨진 평화가 거기 있었다.


📍 다바오의 SM 라낭몰 안에 교회가 있다.

다바오의 SM Lanang은 규모도 크고, 정돈도 잘 돼 있다.
영화관, 식당, 가구점, 유기농 마켓, 그리고…
몰 한복판에 조용히 자리한 성당.

우기철에 비를 피해 몰에 들어온 사람들이
몰 한켠 성당으로 들어간다.
아기 예수상 앞에서 조용히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이들.
아이의 시험을 위해, 아픈 부모를 위해,
혹은 비가 그치길 바라는 기도를 들이붓는다.

몰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피난처이지만,
그 안에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건
"비 속에서 영혼까지 쉬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 바기오의 SM 바기오고지대의 유리 온실

필리핀의 고산도시 바기오는 비뿐 아니라 안개도 자주 낀다.
특히 우기철엔 낮부터 회색빛 커튼이 도심 전체를 덮는다.
그런 날, SM 바기오는 유일한 피신지다.

유리로 된 벽을 통해
안개 낀 도시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다 보면
어느 순간, 내 몸도 마음도 차분히 내려앉는다.
비는 계속 오는데, 나는 따뜻한 초코를 마시고 있다.
그리고 그게, 꽤나 만족스럽다.


왜 필리핀 사람들은 몰을 사랑할까?

몰은 그저 물건을 사고 파는 곳이 아니다.
몰은 사회적 공간이다.
거기선 누군가를 기다릴 수도 있고,
잠깐 눈을 붙일 수도 있고,
어쩌면 삶의 방향을 다시 정리할 수도 있다.

우기철에는

  • 전기 나간 집 대신 몰로 간다.

  • 와이파이 끊긴 동네 대신 몰에서 공부한다.

  • 비 때문에 약속이 취소된 날, 그냥 혼자 몰 산책한다.

몰은 우기철의 제3의 공간, ‘삶의 연장선’이다.


비가 올 땐 우산보다, 몰로 간다.

오늘 필리핀에 비가 온다면,
길 위에선 사람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이미 SM, 아얄라, 로빈슨, 혹은 메가몰 안에 있다.
그곳은 젖은 삶을 말리고,
꿉꿉한 마음에 에어컨 바람을 불어넣고,
배고픈 이들에게 치킨 한 조각을,
지친 이들에게 빈 벤치 하나를 내어준다.


《끝말》

“왜 필리핀 사람들은 몰에 그렇게 집착해요?”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생존이야.”

우기철의 몰은 단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다.
그곳은 수많은 일상이 부딪히고, 머물고, 다시 흘러가는
진짜 의미의 **‘공공의 거실’**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종종,
비보다 더 따뜻한 풍경을 보곤 한다.
누군가의 웃음, 누군가의 위로,
그리고...
젖은 슬리퍼로 바닥에 남긴
하나의 긴 흔적.


☂️ 비 오는 필리핀에선
몰이 곧,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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