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서민 하루살이, 웃음 속의 현실
🌅 아침 – 하루의 시작, 냄새와 소리로 깨어나는 골목
아침 여섯 시. 하늘은 흐릿한 회색빛이지만, 골목은 이미 깨어 있다.
“Tilaok! Tilaok!” 하고 닭이 힘차게 울고,
옆집 라디오에서는 타갈로그 팝송이 흘러나온다.
밥솥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다른 집에서는
“Pritong isda!” (튀긴 생선) 냄새가 골목 깊숙이 번진다.
이 집 가장 로멜은 오늘도 새벽부터 트라이시클을 몰러 나간다.
손바닥에 쥔 돈은 20페소, 아침 로드(휴대폰 선불충전)와 커피 한 잔 값이다.
출근길에 기사는 승객을 부르며 손짓한다.
“Sakay na! Sampung piso lang!” (타요! 10페소만!)
승객 한 명이 오르면, 하루가 굴러가기 시작한다.
☀ 낮 – 더운 공기와 하루 벌이의 무게
정오 무렵, 햇볕이 골목을 덮는다.
로멜은 이미 오전에 150페소를 벌었다.
하지만 주머니 속 지폐는 두툼하지 않다.
아침에 쓴 기름값 50페소, 커피와 빵 20페소, 남은 건 80페소뿐이다.
점심 식탁 위에는 볶은 채소와 밥이 놓인다.
막내아들이 묻는다.
“Ma, may ulam pa ba?” (엄마, 반찬 더 있어?)
아내는 웃으며 생선 한 점을 덜어주며 말한다.
“Kain tayo!” (같이 먹자!)
오후에 벌어들인 250페소는 금방 흩어진다.
아이들 학교 용돈 20페소씩 세 명 = 60페소,
봉지 세제와 간식 30페소,
전기세를 위해 저금통에 50페소.
남은 건 110페소, 하지만 저녁거리를 사야 한다.
사리사리 스토어 앞에서 아내가 말한다.
“Bili ako ng sabon, yung maliit lang.” (세제 하나만, 작은 거요)
주인은 익숙한 미소와 함께 봉지를 건넨다.
🌙 저녁 – 다시 골목으로 돌아오는 웃음
해가 지면, 골목은 하루 중 가장 시끌벅적해진다.
아이들은 맨발로 달리며
“Tara, laro tayo!” (야, 놀자!) 하고 외친다.
강아지가 짖고, 작은 공이 골목 양쪽을 오간다.
로멜은 하루 수입을 세어본다.
아침 80페소 + 오후 110페소,
하루 총 남은 돈은 190페소.
이 중 100페소는 쌀 사는데, 50페소는 다음 날 교통비로,
남은 40페소는 간식이나 예비비로 쓰인다.
결국 하루 600페소를 벌었지만, 주머니에는 남는 게 없다.
저녁 식탁엔 아침 남은 밥, 점심 반찬, 그리고 새로 튀긴 바나나튀김이 놓인다.
아내가 말한다.
“Bukas, baka mas marami ang pasahero.” (내일은 승객이 좀 더 많을지도 몰라.)
로멜은 웃으며 대답한다.
“Sana nga.” (그러면 좋지.)
그리고 가족 모두 함께 웃는다.
그 웃음이, 이 집의 가장 큰 재산이다.
하루의 반복 속에서
이 풍경은 마닐라의 혼잡한 거리에서도,
세부의 해변 마을에서도,
바기오의 언덕 마을에서도,
시골의 조용한 마을에서도 비슷하다.
벌이는 빠듯하고, 지출은 먹고사는 데 전부지만,
그들은 여전히 웃는다.
어쩌면 웃는 것 말고는 버틸 방법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